▲조형진(36기,한성대)

국방부 장관의 영어 명칭은 국가마다 다르다.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와 대한민국은 ‘Minister of National Defense’를 사용하지만, 미국은 ‘Secretary of Defense’라 한다. 단순한 표현 차이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 명칭 속에는 각국이 국방 리더십을 어떻게 이해하고 구조화하고 있는지가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자격과 리더십을 논할 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Minister’는 라틴어 ministrare(봉사하다, 섬기다)에서 유래했지만, 현대 정치 체계에서 ‘Minister’는 단순한 봉사자가 아니라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국정 운영을 주도하는 정무직으로 인식된다. 각 부처의 수장으로서 정치적 철학을 구현하고 행정을 조정하는 정치인의 역할이 강조된다.

반면, ‘Secretary’는 secretarius(비서관, 관리자)에서 비롯되며, 미국의 ‘Secretary of Defense’는 직접 군을 지휘하기보다는 국방 시스템을 조정·운영하는 최고 책임자의 성격이 강하다. 실질적인 작전 지휘는 합참의장, 각 군 참모총장, 전투사령관 등 직업 군인이 수행하며, 장관은 전략적 방향성과 민간 통제를 담당하는 전문가형 민간인이다.

한국은 형식상 ‘Minister’ 체계를 따르지만, 실제로 국방장관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미국의 ‘Secretary’에 더 가깝다. 그동안 군 출신 인사가 국방장관직에 주로 임명된 것도 이러한 구조적·현실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며, 현재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상태다. 북한의 실질적 위협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의 군사력은 고도화되어 있다. 이처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환경에서 국방장관의 판단은 곧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달리 군의 작전 통제 권한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고, 장관의 발언 하나가 실제 병력 운용과 전략 배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위계질서가 강하고 폐쇄적인 군 조직에서 장관이 조직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실질적 리더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결국, 군 출신 장관의 비중이 높았던 것은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한국의 안보 현실이 요구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최근 일각에서는 “그동안 사관학교 출신이 장악해온 국방장관직을 이제는 ROTC 출신에게도 개방해야 한다”는 출신 안배론을 제기하고 있다. 심지어 ROTC 출신 중 장기복무 없이 민간으로 전환한 인사들 중에서 장관을 임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매우 위험하고 단순하다.

국방장관은 국가 안보와 군사 작전의 전략성과를 책임지는 자리다. 이 직위는 인사 다양성이나 정치적 균형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유사시 전쟁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전문성과 판단력을 갖춘 인물이 맡아야 한다. 출신은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단순히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장관의 적격성은 복무 연수나 전역 이력보다, 전시작전 개념에 대한 이해, 전략 운용 역량, 글로벌 안보 환경 속 동맹을 이끌 수 있는 실력에 달려 있다. ROTC 출신이라 해도 장성 진급 없이 조기에 전역한 경우, ‘민간인 자격’은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군사 전문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국방장관을 출신별 안배 대상으로 보는 순간, 대한민국의 안보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다양성과 균형은 장관 임명 이후의 운영 원칙으로 구현돼야지, 임명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과 미국은 모두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며, 대통령은 헌법상 군 통수권자다. 국방장관은 단순히 대통령의 정무 철학을 전달하는 중개자가 아니라, 대통령의 전략 구상을 군에 연결하고, 연합작전의 성과를 조율하는 실질적 관리자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전시작전통제권을 공유하고 있으며, 한미연합군 체계 속에서 국방장관은 전략 실행의 중추다. 이 자리는 한국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 국방장관과도 전략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식견이 필수적이다. 정치적 안배, 지역균형, 보은 인사 등의 이유로 군사 문외한이 이 자리에 오를 경우, 그 공백은 작전 혼선, 전략 실패, 동맹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국방장관은 민간인이어야 한다. 이는 문민통제 원칙이자 민주주의의 대전제다. 그러나 민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인, 낙선자, 외교·복지 전문가 등 누구나 장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국방장관은 병영 구조, 장병 심리, 전략 무기의 의미, 방산 예산, 군사외교의 언어를 이해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특히 한미연합작전을 전략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역량은 필수다.

결국 국방장관은 단순히 ‘민간인 출신’이 아니라, ‘군사 전문가형 민간인’이어야 한다.

‘Minister’든 ‘Secretary’든,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느냐이다. 정무직이라는 명목 아래 비전문가가 기용되면, 안보에 허점이 생긴다. 대한민국은 언제든 위기로 전환될 수 있는 안보 현실 속에 있다. 전투화의 흙먼지를 알고, 사선에서의 바람 방향을 이해하며, 미국 국방장관과 대등한 전략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리더—지금 대한민국에는 그런 국방장관이 필요하다.

군의 언어를 알고, 국민의 생명을 무게감 있게 여길 줄 아는 사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문민통제’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