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진(36기,한성대)
한국 사회에서 ‘다이소’는 단순한 생활용품 판매점이 아니다. ‘천 원의 기적’,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곳’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다이소는 어느새 한국인들의 일상과 감성에 깊이 자리 잡은 브랜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소를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단지 물건이 저렴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다이소에서 ‘이 가격에 이런 물건을?’이라는 놀라움과 만족감을 경험하며 충성 고객이 된다. 즉, 다이소의 핵심 경쟁력은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 즉 ‘가심비(價心比)’에 있다.
이와 같은 전략적 접근은 오늘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ROTC중앙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ROTC는 오랜 시간 동안 장교 양성의 한 축으로 국가안보에 기여해왔다. 동시에 많은 청년들에게 리더십 훈련의 기회를 제공했고, 사회로 진출한 뒤에도 강력한 네트워크와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ROTC에 대한 관심과 참여율은 예전만 못하다. ‘군 복무의 또 다른 방식’이라는 인식은 MZ세대의 눈에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ROTC중앙회가 택해야 할 전략은 과거의 영광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이소처럼 ‘지금, 여기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브랜드로의 전환이다. ROTC는 단순히 군 장학생 제도나 장교 양성 루트가 아니라, 자기계발과 성장, 사회적 신뢰와 명예가 함께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우선, ROTC가 제공하는 ‘혜택’ 중심의 홍보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 등록금 지원, 가산점, 취업 혜택 등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지만, 그것만으로는 청년들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 지금의 세대는 조건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ROTC를 통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어떤 가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 어떤 정체성과 스토리를 가질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ROTC중앙회는 ROTC를 단순 제도로 설명하기보다, 인간적인 이야기와 정서적 가치에 기반한 ‘라이프 브랜드’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예컨대, 훈련을 통해 얻은 인내심, 동기들과의 끈끈한 유대, 선후배 간의 깊은 신뢰,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도 이어지는 네트워크와 상호부조의 문화는 ROTC만이 줄 수 있는 유산이다. 이를 드라마, 웹콘텐츠, 다큐멘터리, 브이로그 등의 방식으로 시각화하고 콘텐츠화해야 한다. ‘알면 감동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면 끌리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또한, ROTC중앙회 자체의 신뢰성과 품질 역시 재정비해야 한다. 다이소가 단지 싼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싼데도 믿을 수 있는 품질’을 제공하기에 사랑받는 것처럼, ROTC중앙회도 구성원들에게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조직’이라는 인식을 줘야 한다. 이는 내부 소통의 투명성과 시스템 운영의 일관성, 그리고 선후배 간의 명확한 역할 인식과 윤리적 책임에서 비롯된다. ‘선배’라는 이름으로 후배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진심 어린 멘토링과 실질적 도움을 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아울러 ROTC의 정체성을 더욱 넓게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ROTC는 군 복무 방식의 하나일 뿐 아니라, 한 사회가 책임 있는 리더를 어떻게 양성하고 이어가느냐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군복을 벗은 이후에도 사회 각계각층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ROTC 출신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ROTC중앙회는 더 이상 ‘예비역 친목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리더십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결국 관건은 ‘감탄’을 주는 조직이 되느냐이다.
다이소가 '이 가격에 이 품질이라니'라는 감탄을 끌어냈듯, ROTC도 '이 조직에서 이런 성장을 할 수 있다니', 'ROTC 출신이라서 자랑스럽다'는 진심 어린 만족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럴 때 ROTC는 다시금 청년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철학이다. 제도가 아니라 스토리다. ROTC중앙회가 시대의 언어로 스스로를 다시 말할 수 있을 때, 그 조직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