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의 이해'라는 부제로 대한민국ROTC 중앙회산악회(회장 채한규,25기/국민대)가 제10차 해외 산행지로 택한 곳은 중국의 수도, 북경(北京). 오랜 역사와 웅대한 자연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6월 14일부터 4박 5일간 진행된 일정은 단순한 등반을 넘어, 문화탐방과 항일유적지 순례를 포함한 복합형 산행이었다.
이번 원정은 재중산악연맹회장 33기 최현진동문이 현지 가이드하여 백석산과 베이링산 등 중국 내륙의 명산을 오르고, 북경 시내의 항일유적지를 둘러보며 애국심을 함양했다.
1일차 – 북경의 옛 정원을 거닐다
오전 늦게 북경에 도착한 일행은 곧장 중국 황실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이화원(頤和園)으로 향했다. 청나라 건륭제가 어머니를 위해 조성한 정원이라는 이곳은, 사실상 북경 인구 급증에 대비한 저수지를 중심으로 건설된 ‘기능성 정원’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곤명호 주변을 따라 늘어선 긴 회랑(長廊)과 서태후의 흔적이 짙게 남은 전각들을 돌아보며, 한 왕조의 흥망과 중국문화의 깊이를 새삼 실감했다. 비에 젖은 이화원의 복도와 누각이 오히려 운치를 더했다.
▲청일전쟁 발발시 서태후가 군함모형으로 출정식을 했던 곤명호 전경
2일차 – 백석산, 태항의 시작점에 서다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은 백석산(白石山, 해발 2,099m)이었다. 중국 태항산맥 북단에 위치한 이 산은 ‘장가계’와 비견되며, 하얀 대리석 바위와 기암괴석, 협곡과 잔도가 어우러진 장관을 이룬다.
▲백석산 정상에는 태항산맥의 우두머리라는 문구가 있다.
정상에 오르자 ‘태항산의 수장(首長)’이라 새겨진 표석이 나타난다.도교의 본산지로도 알려진 태항산맥에는 도사들의 전설이 풍성하며, 독립운동가들이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은신하던 터전이기도 하다.그런 역사의 무게 위를 ROTC 동문들이 묵묵히 걸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일반 코스가 아닌, 현지 등산가들이 찾는 진입 코스를 선택한 덕에, 일행은 북경 근교의 장대한 협곡과 고요한 산세를 오롯이 만끽할 수 있었다.
3일차 – 베이링산, 북방의 초원을 걷다
“북방의 알프스”라 불리는 베이링산(北嶺山, 베이링산)은 완전히 다른 풍광을 선사했다. 해발 2,000m 부근에 펼쳐진 초원은 목가적 풍경 그 자체. 말과 양, 소떼가 유유히 풀을 뜯는 모습은 우천으로 보지 못했지만, 하산시 비가 그친 뒤에는 배웅나온 블랙야크를 볼 수 있었다.
▲드넗은 초원을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동문들.
구름이 흩어진 맑은 오후, 산책하듯 걷는 초원길에서 참가자들은 도시의 시간을 내려놓고, 자연의 품에 안긴 듯한 여유를 만끽했다.
▲비바람을 뚫고 보급품을 날라온 두 마리 말이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4일차 – 북경 항일투쟁 유적지 답사
이번 원정산행의 또 다른 테마는 북경 항일유적지 순례였다. ROTC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무장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참가자들은 하루 동안 북경 시내의 주요 유적지를 답사했다.
첫 목적지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활동했던 북경대학 서관(북대홍루). 선생이 고대사 연구를 통해 민족의 정통성과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했던 그곳은 젊은 시절의 모택동이 책을 빌려주고 관리하던 곳이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자결한 곳임을 알리는 비석
다음은 경산공원. 북경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서 자금성과 천안문을 내려다보며,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목숨을 끊은 ‘홰나무’를 직접 마주했다. 역사의 비극과 권력의 무상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시스쿠 성당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이어진 시스쿠 성당은 조선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와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가 깃든 곳. 더불어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정근, 도산 안창호 선생이 북경에서 활동할 때 근거지로 삼았던 성소이기도 했다. 이곳은 단지 종교적 의미를 넘어, 조선 독립운동의 숨결이 서린 공간이었다.
답사의 마지막은 창관루. 1922년, 독립운동 단체들이 모여 군사통일회의를 열었던 바로 그 자리. 100여년 전 그 뜻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지만, 이번 ROTC중앙회 산악회가 그 터를 찾아 애도함으로써 역사적 의미를 다시금 되살렸다.
▲'만리장성에 올라보지 않은 자, 사내대장부라 말하지 말라' 는 모택동의 유명한 말이 적혀있는 비석.
5일차 – 만리장성에서의 작별
마지막 날 일정은 거용관(居庸關) 만리장성 탐방. 북경으로 들어오는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진 거대한 성벽을 오르며, 참가자들은 모택동의 문구가 새겨진 비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남겼다.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은 자, 사내대장부라 하지 말라.'는 그 말처럼, 각자의 내면의 산을 넘어선 대장부들이 거기 있었다.
이번 산행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었다. 자연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역사를 통해 오늘을 다잡으며, 동문 간의 끈끈한 정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해외 원정산행에 참석한 정택진(36기)동문은 "낮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고, 저녁이면 장향, 청향, 농향 등 다양한 백주를 맛보며 사람에 취한 산행이었다"며 내년 산행 참석을 다짐했다. 한 지인 참석자는 "다시 대학 간다면 꼭 ROTC를 지원하겠다"며 만족감을 표현했다.
현지 행사를 진행한 최현진 동문은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선·후배님들의 참여와 배려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며 "북경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에 프리미엄 맞춤형 산행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