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진(36기,한성대)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故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 씨(51)는 매주 월요일이면 경기 광주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으로 향한다. 1시간 30분 거리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병역이행자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그녀의 피켓에는 “군가산점법 통과시켜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 씨의 남편은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의 조타장으로 임무 수행 중 북한군과의 교전에서 전사했다. 그의 희생은 단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안보는 이처럼 조용히 군복을 입고 청춘을 바친 수많은 장병들의 헌신 위에 세워졌다. 이들이 바친 젊음과 열정에 대한 사회적 보상은 단순한 온정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정의이며 지속 가능한 안보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은 특혜가 아니라 정의다

군 복무는 헌법이 명시한 국민의 의무다.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국가의 명령에 따라 수행된 복무에 대해 사회가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정의 실현이다. 그러나 1999년 헌법재판소는 군가산점 제도가 여성과 장애인의 공직 진출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는 병역의무가 지닌 법적·윤리적 성격을 간과한 판단이었다.

평등은 단순히 동일한 조건의 제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도 공정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 실질적 평등을 의미한다. 병역을 이행한 청년들이 아무런 보상 없이 경쟁의 장에 내던져지는 현실은 역차별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군 복무로 인해 청년들은 생애 가장 생산적인 시기인 20대 초반을 국가에 헌신한다. 그 기간 동안 취업 준비, 어학연수, 인턴십 등 중요한 경력 개발 기회를 잃는 것은 물론, 신체적·정신적 부상을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희생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없다면, 군 복무 기피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국가 안보의 기반을 위협하게 된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군가산점 제도의 위헌 판결 이후 25년이 흘렀다. 그동안 사회는 크게 변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는 급격히 확대되었고, 군에서도 숙련된 여군 간부들의 역할이 늘고 있다. 여성 ROTC 제도의 도입은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안보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성별 구분이 아닌, 복무 여부와 그로 인한 기여와 손실을 중심으로 보상 체계를 재설계해야 할 때다.

병역은 단순히 시간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에 대한 헌신이다. 군 복무자는 그 과정에서 강인한 정신력, 리더십, 위기 대응력, 팀워크 등 사회적 역량을 키운다. 이 자산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것은 국가의 도덕적 책무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적 투자다.


국제 사회의 사례에서 배우자

국제 사회는 이미 군 복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보편적 가치로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제대군인에게 공무원 채용 시 가산점, 교육 및 주택 지원, 의료 혜택 등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닌, 군 복무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공식 인정하고, 이들이 민간 사회로 부드럽게 이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체계적 노력이다.

대한민국 역시 획일적인 ‘가산점’ 방식에서 벗어나, 군 복무로 축적된 경험과 역량을 실질적인 가치로 인정하는 다층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채용 시 서류 심사, 면접 등 다양한 평가 요소에 군 복무 경험을 반영하고, 특히 장교 및 부사관 출신에게는 리더십, 위기 대응 능력 등 군에서의 역량을 고려한 평가 항목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복무 중 습득한 기술과 행정 경험, 교육 훈련 이력 등을 관련 분야의 경력으로 인정하고, 제대군인 대상 직업교육, 대학 진학 지원, 학점 인정 등의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점수 가산이 아닌, 역량 기반 보상을 통해 형평성 논란을 줄이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접근이다.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영웅들

한편, 정부와 군이 군 복무의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제1연평해전에 참전했던 참수리 325호정의 승조원 8명이 국가유공자 신청에서 ‘비해당’ 판정을 받았다. 부상을 입은 장병들조차도 교전 직후 진단서가 없고, 전역 후 사회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들은 “우리가 승리한 전투였음에도, 희생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고 토로했다.

이와 같은 현실은 군 복무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무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군인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존재하며, 이는 군 복무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군 복무가 ‘인생의 낭비’처럼 여겨지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는 1999년 군가산점 위헌 판결의 배경이기도 하며, 지금까지도 제대군인 처우 개선 논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와 군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하고, 이러한 무관심을 방치한다면 앞으로 자발적으로 군에 나서려는 청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군 복무를 자랑스러워할 이유를 사회가 제공하지 않는다면, 누가 기꺼이 헌신하려 하겠는가?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급변하는 안보 환경과 사회 변화, 특히 성 평등의 진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군 복무자에 대한 보상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과거의 논리와 제도를 반복하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군 복무의 다층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미래지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제대로 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이 바로 변화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