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곤지암 시대
■ 교육현장 28 (준비된 변화)
김 교관님의 지병문제도 있었지만, 어느덧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새로운 약속의 땅, 사업자 등록을 별도로 내고 드론실기교육장 부지계약서를 손에 들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준비와 시도는 옳았다. 곤지암 교육장이 5.15일자로 부지 평탄작업을 했고 부대시설 컨테이너안의 선반 집기류, 이동식 화장실 설치를 끝으로 5월 말경에 완성됐다.
전 교관님의 도움으로 1m 대형 콘, 60cm 콘 수술을 상설 실기시험장과 동일하게 설치하고 나니 이제 제법 실기교육원 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축하 방문이 줄을 이었고, 교육생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다른 교육원을 둘러보시고 오시라' 안내를 했고, 곤지암 인근의 타 교육원을 둘러보신 분들이 다시 오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인원이 차서 대기자 순번 받고 합격생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셔야 한다고 안내할 정도가 되고나니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뭣 때문에 이렇게 까지 여기로 몰려오는 걸까?
누구는 군대 가기 전에 따서 갈려고, 드론제작업체에서 일하는데 테스트를 하려면 자격증이 필수란다. 일터에서 유용하게 자기가치를 높이는 일환으로 배운다 하였고, 나이 60이 넘어 남들이 하니 뒤처지는 것 같아 취미활동으로 하려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이것은 배우는 목적일 뿐, 이곳 곤지암 까지 오는 것은 다른 이유였다. 각종 블로그, 홈페이지를 보고 문의전화, 방문, 상담으로 이어졌다. 동호회, 가족적인 분위기를 첫째로 꼽았다. 둘째는 교관들이 많았고, 셋째는 홈피의 사진이 남달랐던 것이었다.
김 교관(이하 김 대표로 칭한다)의 호칭도 통일하고, 이분의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김 대표의 영향력과 상담기술, 영업력은 탁월했다. 인근 S0교육원, 곤00교육원, 00교육원등 4개 이상이 부근에 포진해 있는데도 굳이 이곳으로 와서 등록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교육생이 합격해서 나가야 다른 교육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교육원 서너 곳 둘러보고 다시 오세요” 실제 그렇게 얘기했다. 1라인 동 시간 때에 3명, 2개 라인, 오전반, 오후반, 주말반도 꽉 차서 7시 새벽반까지 만들어야만 했다. 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밤잠도 별로 없으신 김 대표님은 항상 새벽 6시 즈음에 교육원 문을 열어 놓고 계셨다.
김 대표님의 부지런함과 꼼꼼함, 실수없는 업무처리는 정교관 어느 누구보다도 탁월 했다.
교육생중 이해가 안가는 분이 한 분 있었다. 태안에서 오셨다는데 2시간 30분 거리에 드론교육원이 100개는 족히 더 있을 텐데, 굳이 여기에 접수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 교육현장 29 (정교관 라인업을 갖추다)
교육원의 조직도는 이랬다. 김 대표는 실기평가 교관으로 영업과 상담, 실기시험 등록, 접수, 시험장 이동, 교육원 전반적인 외부 업체와의 연계, 기체조립 등을 맡았다. 가르치는 거 빼고는 거의 전부 맡아서 했다.
정교관으로는 나, 전00, 한00, 권00, 권00, 박00, 최00, 박00 교관으로 8명, 부교관으로는 교관 반의 10여명이 기초적인 교육을 맡고 있었다. 교육생으로는 조종자 30여명이 비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정교관들은 자기시간 될 때 나와서 교육생들을 가르쳤고, 부교관들은 정교관이 없을 때만 교육생을 가르치고, 있을 때는 정교관 또는 실기평가 교관으로부터 비행교수법등 드론의 요모조모를 지도 받았다. 김 대표는 교육생을 가르치지 않아서 나머지 전반적인 관리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여기서 드론교육원은 혼자서 운영, 관리 해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교육생, 교관들의 인적관리, 실기시험접수관리, 기체정비관리, 수익관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상황 변화에 따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최소 3명에서 5명의 교관이 함께 관리해야 제대로 돌아갔다.
■ 교육현장 30 (방제 헬기가 들어오다)
대만 얼00이란 RC헬기 제조사에서 15 리터 급 방제용 헬기를 만들었고, 국내에서 시판하기 위해 테스트 비행을 이곳 드론교육원에서 하겠다고 했다. 10여년이상 헬기를 만진 진00 교관이 가져와서 비행하는 장면을 보니 실로 대단했다. GPS모드와 APS 모드로 조종기에서 손을 떼어도 호버링이 가능했다. 방제능력도 드론과 맞먹었다. 이걸로 대체되거나,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주변 얘기도 있었지만, 기존에 RC헬기를 경험한 세대는 따로 드론을 배울 필요 없이 헬기 자격만 갖추면 되는 것이었다.
얼마 후 Yamaha R-MAX라는 2억3000만원 방제 헬기가 와서 연습을 하고 갔다. 실로 웅장하였다. 방제용 드론헬기와 엔진헬기는 유지, 보수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방제 효과는 30리터 급 엔진헬기가 조금 더 나아 보였으나, 전체적인 운영 면에서는 방제 드론이 몇 배는 메리트가 있었다.
반면, 방제 드론 헬기는 새로운 장비의 먹거리로 수익창출, 일자리창출이 연결되는 순간 이였다. 가격이 1,500만원, 부수 기재 배터리까지 2,500만원이 넘어서 접근하기 쉬워보이지는 않았다. 김 대표의 추진으로 정교관들은 진 교관에게 헬기를 배우기로 했다. 이곳에 전시해놓고, 판매와 교육, 연습도 하고, 수익창출이 기대되는 대목 이였다. 헬기 시뮬레이터와 4채널 장난감 헬기부터 연습해야 할 것 같았다. 김 대표는 헬기-데이라도 만들 기세였다.
작가 프로필
필명 : 리모컨
경북 문경이 고향.
서울 송파거주.
국민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졸업.
ROTC 육군대위 만기전역(34기)
소개 :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생활을 하는 3딸의 가장이자 평범한 사람이다.
호기심이 많았고, 오랜 기간 다양한 취미와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중 우연하게 드론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접하게 되고, 그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고,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스킨스쿠바 강사, 프리다빙 강사, 드론 실기평가관의 자격을 갖추었고 드론교육원에서 교관으로 일한 적도 있었고, 조종면허와 소형선박면허 소지자로 한강에서 구조업무에도 종사한 적도 있다.
2종 소형면허를 취득해 bmw 대형 오토바이를 타고, 또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1급 아마추어무선기사. 제한무선통신사, 육상무선통신사, 항공무선통신사 등의 자격을 취득해 무선을 쓰는 것도 일상화되었다.
운수업체에 취업하기 위해 도로교통안전관리자로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아직 하지 못했고, suv 자가정비를 한 지도 어언 20여 년이 지났다.
취미는 직업이 되면 피곤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취미는 취미를 넘어 직업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 여정을 함께 되돌아 보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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