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현장 17 (전 교관 김천 교관과정교육 입교하다)
2019년 11월 6일부터 8일 까지 전 교관님의 김천교관과정 입교 일자가 잡혔다. 약 한달 전에 내가 업데이트해서 다시 만든 교관과정 요약노트와 기출문제집을 제본까지 떠서 드렸었다. 4~5일 남은 날에 물어보니 역시나, 바빠서 아직 한 번도 다 못 읽어보셨단다. (ㅇㅆ, 내 이럴 줄 알았어!)
하루 전날인 11월 5일 오전에 전 교관은 먼저 내려가고, 나는 오전에 일을 보고 오후 기차로 김천으로 내려갔다. 마침, 김 교관님과 크롱 교관 두 분이 보은 조종자 실기시험을 마치시고, 점심을 김천에서 전 교관님과 함께 먹은 후 서울로 올라가시는 길이라 하셨다. 그때 3~4시가 되어서 나는 김천에 도착했다. 815호, 816호 나란히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풀었다.
헌데, 문제는 공부 수험 스타일 이었다. 전 교관은 방에서만 공부를 하신다. 두문불출, 끼니를 다 챙겨 시장까지 봐오셨는데 냉장고에 계란 한판을 보고나니 스트레스가 심한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정반대로 나는 편한 곳인 방에서는 공부가 안되었는데) 저녁 먹고 숙소 1층 커피숍에서 문제풀이를 하는 데 참견하는 것도 싫어하신다. 그럼 모르는 것 이해가 안 가는 것을 물어보라 하니 몇 가지 얘기를 하신다. 답인 이유와 답이 아닌 이유를 설명 드렸다.
250문제 중에는 답이 틀려 오류난 문제가 2~3문제 있었고, 애매해서 2개가 답인 문제도 있었다. (사실, 그런 문제는 얼마나 공부했는지 또, 물어보는지, 안 물어보는지 알아보기위해 일부러 그렇게 놔두었다) 공부는 혼자 하시는 것이 더 잘될 것 같아 따로 있기로 했다.
나는 낮에는 숙소에서 노트북으로 교관과정 요약노트 편집을 하고, 밤에는 별 다방 2층에서 기본교재, 표준교재를 찾아가며 기출문제집의 오류와 오답을 찾아 문제를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전 교관이 이수하고 나면 또 한 차수가 늘어나 기출문제는 11배수, 275문제가 된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그 뒤에 입교할 한 교관의 합격을 보증하는 자료가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그 뒤에, 뒤에 있는 교관들까지 혜택이 돌아갔고 1년이 지난 지금도 혜택을 교육원에서 나누고 있다.(서점에 교관과정 기출문제 관련 책자가 봇물을 이룰 때까지) 결국 내 생각은 옳았다.
전 교관님은 교관과정 시험에 합격하셨고, 동탄 ‘쿠ㅇ쿠ㅇ’로 가서 교육원 식구들과 합격 축하파티를 하고 김 교관님으로부터 교육원 정교관 직인을 찍을 수 있는 만년 도장을 선물 받으셨다. 이렇게까지 합격시킨 내가 다 대견했다.
■ 교육현장 18 (한쪽 눈감고 드론 날리기)
2019년 10월 28.일 청평에서 실기시험구호, 비행 전·후 기체점검표의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읽기 어려웠다. 쫌 큼지막하게 붉은색으로 만들었다. 헌데 색맹이신 조종자 한분이 붉은색은 보이지 않아 다시 검은색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청평시절 아주 어렵게 조종자 자격을 획득한 교육생으로 우리 기억에 남는 것은 색소폰 학원 원장님이시라는 안00 교관님, 한쪽 눈이 거의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안 좋으셨다. 결국, 크롱 교관이 나에게 부탁하였고, 나는 한쪽 눈을 감고, 비행코스 시범을 해가며 교육을 진행했다. 한쪽 눈으로도 충분히 수술을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한 천천히만 기동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봐요, 한쪽 눈 감고도 수술 날리는 콘을 맞출 수 있네요” 조종자 실기시험 5번 만에야 10개월 걸려서 결국 합격하신 안 교관님, 결국 이 분 교관 반도 접수를 하셨고 교관의 길을 굳이(?) 청평에서 함께하고 계신다.
실기평가관 입교 교육받을 때 어떤 교육원 원장님이 자폐증이 있는 학생을 교육한 적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드론교육이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교육현장 19 (한 교관, 진 교관 김천 교관과정교육 입교하다)
2019년 12월 4일부터 6일까지 한 교관과 함께 (일 때문에 바빠서 입교를 미루려다가 크롱 교관의 성화에 내려오신) 진 교관이 입교했다. 두 분다 한 달 전에 앞 차수 기본교재, 요약노트, 기출문제집을 배부하였으나, 진교관은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하고 3~4문제만 아는 거라며, 안내려오고 입교 연기를 하던지, 거의 포기 하려다가 크롱 교관의 성화를 못 이기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하~!
역시 입교 하루 전날 미리 내려와서 둘러보고, 저녁을 먹고 한, 신, 진 교관 이렇게 셋이서 함께 먹고 커피숍에 앉았다. 6시부터 9시까지 내가 나누어준 교재를 펴서 문제풀이를 해드렸다. 기본교재를 설명하고, 나올 문제, 답과 답이 아닌 것을 암기시키고, 문제풀이를 대충이라도 찍게 한 다음 답이 아닌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틀린 문제,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만 숙소 가서 다시 한번 보라고 하고 하루 3시간 3회를 강의해드렸다. 문제풀이 시간 내내 한 교관님은 팔짱을 끼고 듣고 계셨고 간간이 부연설명을 해주셨다, 이미 시험공부가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진 교관이었다.
마지막 날인 시험 당일인 12월 6일 오전 휴식시간에 만나 진 교관에게 “강의를 듣는 것보다 식당에서 나와 함께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 낫지 않으시겠냐?”고 제안했다. 함께 문제풀이를 문답식으로 반복하여 마무리를 짓고, 시험에 들어가셨다. 3시경 시험이 끝나고 나온 한 교관, 진 교관에게 문제복원을 위해 식당에서 기본교재를 펴놓고 답을 맞춰보는데 틀린 것이 몇 개 없다는 것이다. 어라~!
이어서 합격자 이름을 호명하고, 각자의 점수를 확인하는 데 진 교관이 92점으로 2개 틀렸다고 했다. 나, 역시 그 누구보다도 감회가 새롭고 내가 합격한 것만큼이나 뿌듯했다. 한 교관님 역시 시험을 보고 난 후 답안을 맞추고 합격자에 자신의 이름이 불러줄 때 그 기쁨을, 그동안의 고생을 온갖 인상을 써가며 표현하시는 것 같았다. 아직도 그 사진만 보면 웃음이 나오곤 한다.
두 교관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통탄 “쿠ㅇ쿠ㅇ”로 가서 단체 회식을 하고, 비품인 헬기 가방을 선물로 받았다. (집에 가서 열어보니 안에 헬기는 안 들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또 요약노트를 업데이트하고, 기출문제를 12회 차 305문제로 만들었다.
이제 올해 남은 교관은 권 자매 교관 두 사람 뿐이었다. 이 두명만 교관시험에 합격한다면 교육원에서 나의 역할은 다했다고, 다한 것이라고 홀가분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축하 회식이 끝난 자리에서 김 교관의 말 한마디에 나의 이런 생각은 무너져 버렸다)
■ 교육현장 20 (권 자매 교관 김천 교관과정 교육 입교하다)
입교 하루 전날 약속을 잡고 내가 통탄까지 내려가서 ‘코다리’ 점심 식사를 한 후 카페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 위주로 2시간 문제풀이를 해드렸었다. 정확히는 권 교관들이 얼마만큼 준비가 되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하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고 또 그렇게 해야 안심이 되었다.
여성교관은 아주 드문 경우라 김 교관님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시는 눈치였다. 잘하면 교육원의 히트 상품이 될 수도 있었다. 이왕이면 미모의 여성교관이 가르치는 것이 교육적으로 수월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중에 일어나고 말았다.
여성 교관이라 구설수에 오를까 싶어 12월 12일 시험전날 내려가서 저녁식사로 성원 00전골을 사드리고, 커피숍에 앉아하던 대로 대화식 문제풀이를 해드렸다. 수0 교관은 이미 공부가 다 되어있었고, 혜0 교관은 헷갈리는 문제가 많았다. 구미 작은 처남 집에 가서 자고 있는데, 문자로 이해가 안가는 문제를 찍어서 물어보곤 했다. 문자로 답을 해 주다보니 11시가 넘어갔다.
다음날인 12월 13일 아침에 TS 1층 커피숍에 가서 노트북으로 기출문제집 편집을 하고 시험이 끝난 후 강당에 들어가 보니 2개씩 틀리고 92점씩 받으셨단다. 이날은 74명 합격 26명 낙방하였고, 나는 또 기출문제 13회 차 업데이트를 하고 더욱 강한 자료를 만들었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밴드에 실시간으로 진행 상황을 알려드리고 동탄 축하파티를 위해 올라갔다. (그때 전교관은 팔라우 다이빙을 가셔서 댓글과 사진을 올리신 기억이 난다)
또, 다시 반월동 ‘ㅁㅆ’ 소고기 무한리필 집에서 축하파티를 하고 커피숍 3층에서 김 교관님께서는 선물로 권 교관들에게 똑같이 만년도장을 선물하셨다.
다 좋았는데 이후에 교관 반에 사태가 벌어졌다.
■ 교육현장 21 (교관 반을 계속 맡다)
교관 반에 있던 박00, 이00, 홍00, 김00, 이00, 마00 6명의 부교관이 줄줄이 권 교관들 축하파티에 참석한 것이다. 사태는 이후 벌어졌다. 주차장 입구에서 헤어지기에 앞서 마지막 인사말을 듣고자 서 있는데 갑자기 김 교관님이 “신 교관님 내년에 이분들 전부 다 합격시키세요!” 한마디를 날리셨다. 나는 “아니 올해만 하기로 했잖아요. 그렇게 미리 말씀드렸었고요. 못합니다. 이젠 더이상 힘들어서 못해요. 못 한다고요~!” 이건 외마디 비명도 아니고,
여기서 다른 교관님들께 묻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과연, 내 휴가 내고(4일×15만원=60만원), 내차 몰고 내려가서 (차량 기름값 10만원) 내가 3박4일 숙소 잡고(15만원), 밥, 커피(5만원) 사 먹어가면서 교관과정 부교관을 합격시켜서 데리고 올라올 교관이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1명 합격시킬 때 마다 약 90만원 비용이 들었다)
나에게 부탁을 하시기 전에 부교관님들이라면 자기돈 써가면서 이렇게 하겠느냐 묻고 싶었다. 아니 맡아서 하겠다고 하신다면 당장에라도 교관 반을 넘겨주고 싶었다. 드론을 배우고 가르친 2년 동안, 일전 한 푼 교육원에서 돈 받아 본적이 없다. 다 내 돈 써가면서 가르쳤다. (교관 합격생에게 점심밥하고 커피는 얻어먹었다) 왜냐하면, 영리목적인 교육원 때문이 아니라 나의 지인이고, 평생 얼굴 볼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아마도, 나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비용은 교육원에 청구해서 달라고 하셔야지요. 돈을 버는 교육원이 비용은 부담해야지요. 교관과정은 혼자 알아서 하는 거 아닌가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450만원의 교관과정은 비행 로그 80시간 써주고, 부교관이란 직함을 붙여서 비행교수법을 숙달하고, 기체관련 조립, 정비를 배울 수 있는 값이다.
부교관이 시험을 보든지 못 보든지, 시험접수를 안내만 할 뿐, 불합격을 하더라도 그것은 교육원에서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교육생이 스스로 알아서 시험보고 결과의 책임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원에서는 합격할 때까지 교재와 강의교육을 지원해 주었다. 그것이 교관시험 1차 100% 합격의 비결이었고, 지금도 신화 같은 합격률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조종자 과정 역시 시험에 합격, 불합격은 오로지 교육생의 책임이지 교육원은 연습기회를 주고 가르칠 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의 드론교육원의 시스템이다. TS에서도 이렇다 할 뭐가 나와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나는 이러고 있다. 헌데 다행인건 내가 만든 요약노트, 기출문제집 (100p 출력, 제본비용 3만원)과 비슷한 아니, 오히려 더 나은 수험서 3만원자리 책자가 서점에 2020년 9월 10일자로 출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업데이트나 제본해서 배부하지 않아도 되었고, 이 책 한 권이면 다 해결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 프로필
필명 : 리모컨
경북 문경이 고향.
서울 송파거주.
국민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졸업.
ROTC 육군대위 만기전역(34기)
소개 :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생활을 하는 3딸의 가장이자 평범한 사람이다.
호기심이 많았고, 오랜 기간 다양한 취미와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중 우연하게 드론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접하게 되고, 그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고,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스킨스쿠바 강사, 프리다빙 강사, 드론 실기평가관의 자격을 갖추었고 드론교육원에서 교관으로 일한 적도 있었고, 조종면허와 소형선박면허 소지자로 한강에서 구조업무에도 종사한 적도 있다.
2종 소형면허를 취득해 bmw 대형 오토바이를 타고, 또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1급 아마추어무선기사. 제한무선통신사, 육상무선통신사, 항공무선통신사 등의 자격을 취득해 무선을 쓰는 것도 일상화되었다.
운수업체에 취업하기 위해 도로교통안전관리자로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아직 하지 못했고, suv 자가정비를 한 지도 어언 20여 년이 지났다.
취미는 직업이 되면 피곤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취미는 취미를 넘어 직업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 여정을 함께 되돌아 보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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