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드론 총서 - 드론戰 (4)

이 글은 2018년 6.23일 상암동 드론 조종자 필기시험을 보고, 2018년 10.2일 순천 실기시험, 2019년 10.2일 TS 김천 지도조종자 입교시험, 2020년 7.7일 태안 실기평가관 입교시험을 수료한 경험을 적은 글이다. 만으로 2년이 걸렸다. 전쟁과도 같았던 시험의 여정에서 단 한 번도 떨어져 본적이 없었다. 한번에 드론시험에 합격하고자 하신다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김창현 승인 2023.08.02 00:15 의견 0

■ 교육현장 10 (권 자매 실기시험 떨어지다)
2019년 1월 23일 마의 영월 실기시험장에서 나 교관 부인, 정00박사, 권 자매 두 분 해서 총 4명이 낙방했다. 실기시험을 참관하겠다는 조종자 진00씨도 왔는데,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웃 분들께 들어보니 평가관이 깐깐하고 일산차를 타고 와서 삼각자를 들이대는 분이라고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평가위원이 옳다고 본다. 드론은 위험성 때문에 충분한 실력이 갖춰져야만 한다.)

실기시험장은 사진촬영이 일체 금지되어 있고, 실기시험 중에는 실기평가위원 뒤편에서 왔다 갔다 하면 방해가 되기 때문에 불합격이 많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 교관 부인도 열정이 앞서다 보니 그만 철망에 붙어서 평가과정을 보다가 딱 걸렸다. 대량 불합격 사태가 빚어진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괘씸하게 보인 것 같기도 하다.

정00박사 한 분만 합격하고 나머지 3명은 낙방했었다. 다들 충격이 컸었다. 바람과 긴장 때문에 크고 작은 비행 실수들로 누가 봐도 합격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조종자보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실기시험장의 실기평가위원은 절대적인 존재, 자신의 기준으로 공정한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 이해하고 있었다.


■ 교육현장 11 (합격률)
이제까지 한방에 합격한 사람이 90%이상, 두 번 만에는 100% 합격률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불합격은 곧 2~3달을 더 고생해야만 시험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험 대기자들이 많았다.

TS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더라도 한해 1만 여명의 조종자 합격생들이 배출되는데 장롱면허가 될 뿐 실제 취미생활에 국한되고, 사업이나, 일자리로는 별로 연결되는 기미가 안 보이는 것이 현실이였다. 헌데, 점점 뉴스에서는 법이 바뀌느니, 이럴 때 따야 한다느니 하며 기형적으로 교육 시장이 커진 상황이고, 교육 시장 이외에 드론의 뚜껑을 열어보면 99% 중국산 FC와 부품을 사다 쓰는 업체와 업계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같았다.

전국에 교육장은 600개가 넘어가고 이중 전문교육기관은 150여개 남짓이라 한다. 폐업과 손해, 분쟁이 속출 하다보니 여기도 예전의 자동차 운전전문학원 처럼 실기교육원은 살아남지 못하고, 국토부에서 인가한 전문교육기관만 살아남아 그들만이 독식하는 생태계가 만들 질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 교육현장 12 (광나루여 안녕!)
조종자 교육 인원수가 많아지고 광나루는 1개 라인밖에 쓸 수 없어서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비좁았다. 또한, 이곳 광나루 RC연습장 헬기장, 레이싱 드론장, 드론연습장이 혼재하다보니 서로 자리다툼도 있었고, 김 교관님이 광나루 터주 대감 이셨지만, 여하튼 이제는 교육원 덩치가 커져서 이곳은 부적합했다.

이곳은 이00이사님께 맡기고, 드론 조립을 해드리고, 시운전까지 한 후, 이 장소는 00단체의 드론교육장으로 계속 운영 관리된다고 하셨다. 인계가 잘 이루지고, 명맥이 유지된다면 후에 언제든 여기에 와서 드론 관련 지인들을 함께하고 즐기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제3장 청평시대

■ 교육현장 13 (크롱 교관 드론 교육원을 내다)
어찌어찌해서 광나루 생활을 접고, 청평 크롱 교관 집 앞에 드론교육원을 내고, 컨테이너에 드론 살림살이를 차리고 교육은 00대교 부근에서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수풀이 무성하고 관리가 되지 않아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곳, 드론 날리는 장소로는 최적인 (직선거리로 약 100m 가로가 2개 라인 나오는 세로 50m 정도 나오는) 곳이라 딱 좋았다.

바람이 시간 때에 따라 다른 방향에서 불어오고, 10시 쯤 해가 높게 뜨면 강과 골짜기를 따라 곡풍과 산풍이 불어오니 천의 지형조건이였다. 지형적인 요소는 인허가를 받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실제 비행연습을 위해서는 일정한 방향이 아닌 사방에서 강하게 때로 약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가장 필요하다.

순천만 대첩이 있기 전에 그러니까, 청평으로 자리를 옮겨온 것은 내가 실기시험을 보기 전이었다. 나도 이곳에서 5m/s의 강한 바람이 불 때 실기시험 연습을 했다. 시험보기 마지막 전날 이곳에서 전 코스 6회 비행을 하고 김 교관님으로부터 그중 5회 “합격” 사인을 받으며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실기시험 전 다수의 교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비평가를 받아보는 것은 실기시험 때처럼 긴장을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긴장” 이였다. 꼭 해보길 권한다. 경험이 많을수록 긴장은 적응이 되어 덜 하게 된다. 그보다 작은 문제는 “바람” 이였다.

이후 권 자매 교관, 나 교관 부인 등 3명도 이곳에서 열심히 연습하여 2회 차 시험에서 다 합격했다. 허허벌판이다 보니 이제 날이 추워오고, 버려진 페인트 통에 사온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미니 발전기를 돌려 드론배터리를 충전하고, 커피포트로 커피를, 가정용 부스터 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으니 이건 캠핑이 따로 없었다. (원래 그곳은 골프, 캠핑, 고정익, 야구, 축구 등을 제한 없이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 좋은 전 교관님이 (동대문거리 옷가게에서 펼치는) 천막을 사오셨다. 옆면도 접착식 매크로 벨트로 부착하고 투명 창이 있어 안으로 밖으로 보이고, 안에서 등유 난로를 피우며 어묵을 해먹었다. 소시지도 굽고, 광나루시절보다 10배는 따뜻하게 발전한 것 같았다.


■ 교육현장 14 (최 교관 정교관이 되다)
최00교관이 나보다 먼저 김천 교육입소를 해서 지도조종자 자격을 획득해 왔다. 청평에서 만나 TS 교육 때 배부받은 기본교재를 함께 보며 시험에 나온 내용을 설명해주었고, 접어놓은 페이지마다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여기에 나는 가지고 있던 기출문제와 요약 노트를 미리 읽어두었고, 오래된 기본교재도 미리 받아서 읽어본 터라 내용이 어려운 것은 없었다.

몇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을 (항공안전법의 제130조 안전개선명령 위반과 항공사업법 제39조 사업개선명령 위반이 처벌은 1천만원이하의 벌금형으로 같은데 다른 내용이 무엇인가요?) 최 교관에게 물어보고 김 교관님에게 물어보니 대답 대신 돌아온 말은 “공부 다 했구먼? 더 안 해도 합격하겠는데요?”라고 얘기를 하셨다. 이미 준비가 된 상태로 입소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나만의 생각이 옳았음을 이때 알았다.


■ 교육현장 15 (신 교관 김천 TS 교관과정교육 입교하다)
거의 1년이란 시간을 기다려 교관입교 순번이 돌아왔다. 지역은 김천, 날짜는 2019년 9월 29일 부터 10월 2일까지 3일간 하루 8시간 교육받고 마지막 날 오후 2시에 시험을 치르고, 3시에 합격자 발표 후, 이수 증을 교부받는 교육과정 이였다. 미리 나 교관으로부터 숙소예약과 식사, 공부 방법을 지도받았었고, 최 교관으로부터 저번 주의 기출문제를 얘기 들었으니, 가히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육과정은 험난했다. 그 이유는 한번에 100여명이 입소하고 (미 입소자 1~4명 정도) 절대평가이다. 4점짜리 25문항 중 8개 틀리면 68점으로 낙방이고, 재 접수 후 3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7개 틀리면 72점으로 합격이다.

쉬는 시간에 둘러보니 쉬지 않고 아침에 받은 TS 기본교재를 읽어보며 밑줄 긋고 계시는 분은 이미 낙방의 기로에 서 있음에 다름이 없었고, 3장짜리 프린트물이나, 10여장 제본으로 교육원에서 복사해준 복원 기출문제를 보시는 분도 있었다. 대단히 어려운 경우이다. 이마저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강의 내내 졸다가 정작 한, 두 문제 차이로 낙방하니 말이다.

한데, 강의 시간 내내 기본교재는 보지도 않고, 팔짱을 끼고 앉아, 하하~호호! 웃으며 시험에 나올 법한 문제를 날카롭게 질문 하는 분도 있었다. 이 분이다! 이 사람은 완전한 합격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음은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볼 땐 미리 선행 학습한 사람, 이미 시험 볼 준비가 된 사람만이 합격할 수 있는 그런 거였다. 여기서 또, 내 생각이 옳다구나 생각했다.

강의 도중 어느 강사분이 2~3번은 기본이요, 6~7번을 낙방하고 재입교 하신분도 있다고 하셨고, 추측해 보면 대부분의 입교 교육생이 60점, 64점, 68점, 72점, 76점에 분포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실로 한 두 문제로 돈과 시간, 명예가 한꺼번에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시험인 것이었다. 국가고시가 다 그렇지 않을까 싶다.

교관과정 교육 이수는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다.

나 역시, 노브랜드에서 장을 봐서 원룸 숙소에서 햇반으로 아침을 챙겨먹고, 8시 이전에 강의실에 입실해서 맨 앞자리 좌측 2번째 칸에 짐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아야 했다. 앞에서는 졸 수 없으니깐 말이다. 내가 만든 기본교재, 요약노트를 본 후, 강의를 듣고, 점심은 직원식당에서 먹고, 5시에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잠깐 자고 7시에 다시 짐을 챙겨 나가서 24시간 하는 콩나물 국밥집,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지냈다.

그리고 별 다방 커피숍 2층 구석에 자리를 잡고 기본교재, 요약노트를 읽고 또, 읽고 준비해간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9시 50분, 문 닫는다고 쫓아낼 때까지 공부했다. 대리운전기사들이 모이는 숙소 앞 편의점 야외 탁자에서 기출문제 중 틀린 부분을 1회 더 보고, 11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들어갔었다.

사실 OMR카드 답안지를 밀려서 쓰지만 않는다면, 모르는 문제 1개, 문제를 잘못 읽어서 1개 틀리겠지? 생각하고 시험을 보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남다른 노력과 열정, 드론실기 시험처럼 자기 자신을 믿고 인내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처자식 다 버리고, 김천 이곳에 와서 자격증을 뭐에 쓰려고 그리 아등바등 따려고 하는지 세삼 어이가 없어 잠도 오지 않지만, “기필코 합격하고 돌아가리라” 이 마음만큼은 한결같았다. 내 뒤에 오실 전 교관 한 교관, 권 자매 교관이 이 고생을 할 생각을 하니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3일차 마지막 날 아침에 짐을 챙겨 두고 아침을 먹고,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도중 비행교수법 시간에 1시에 점심을 먹으면 떨어지고, 안 먹고 그 시간을 공부하면 2시에 시험보고 합격한다는 전설적인 미신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점심을 먹고, 시험을 봤다.

50분 시험, 30분 휴식 후 채점 결과는 합격이지만, 시험점수는 따로 좌측에 줄을 서서 이름과 수험번호를 말하면 개인 점수를 알려주었다. 96점 1개 틀렸다.
100점을 받고 싶었는데, 김 교관님께 면목이 없었다. 하늘이 내게 완벽하게 다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합격생 호명하는 이름을 세어 해보니 99명 입교해서 79명 합격, 20명 불합격이었다. 56년생~98년생까지 실로 나이 때도 참 다양했었다.

특히, 잊을 수 없었던 일은 시험본 자리 앞좌석에서 말을 걸던 입교 동기생이 자신은 2번째 재입교라고 말하는 순간, 합격자 이름을 호명 중에 자신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고 건너뛰자 “아이 ㅆ ㅂ~!” 그야말로 바로 욕설을 하셨다.
(실제 교관과정 미 이수자는 30% 정도가 되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는 오는 것 같다

16:10분경 그곳을 떠나 17시36분경 서울로 가는 KTX를 타기위해 향한 김천역, 매일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던 별 다방 2층의 구석자리, 문제풀이를 하던 숙소 편의점 앞 야외테이블,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김천 TS 교관과정 입교의 기억이다. 학창시절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었더라면, 못갈 대학이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KTX를 타고 서울 집에 도착해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 교육현장 16 (엄마는 70점 아빠는 96점)
그때 와이프가 에어로빅 언니들에게 얘기를 듣고 간호조무사 시험 준비를 한다며 1년간을 준비했던 때였다. 9월 28일 00고등학교에서 필기시험을 보았다는데 나는 4일 뒤인 10월 2일이 시험 날이었다. 간호조무사시험은 과락이 40점이고 총60점 이상이라야 합격한다는데 자존심이 상하셨는지 자세히 밝히기를 꺼려하셨다. (후에 아이들한테 들은 얘기로는 엄마는 70점대라고 하였다.)

아빠는 드론교관시험 96점 맞았다며 일장 훈시를 하였고 그날 밤, 가족들과 저녁식사 겸 파티를 하고, 안방에 컴퓨터 앞에 앉아 요약노트를 열어 시험에 나올 것, 안 나올 것 아예 이건 답, 이건 오답, 이런 식으로 편집 업데이트를 하였다. 기출문제도 그 전에는 4~5회분만 만들었는데, 내가 오늘 복원한 기출문제까지 10회분 10배수(250문제)를 만들었다.

이거 수정 편집하는데 거의 한 달 정도 소요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후에 김 교관님에게 출력물을 보여드리니 “대박”이라고 반기셨다. 이렇게 또 “윈윈” 하였다. 그 다음날 동탄에 이수증을 들고 가서 김 교관님과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다. 이로서 나는 정교관이 되었다.

수료 후, 요약노트를 업데이트 하고, 기본교재를 바탕으로 인터넷을 서핑해서 10배수의 기출 문제집을 만든 계기가 되었고, 후배분들에게 점심 얻어먹고 커피숍에서 강의하고, 문제풀이를 해드렸었다.

▲드론 시범을 보이고 있는 필자

작가 프로필

필명 : 리모컨

경북 문경이 고향.
서울 송파거주.
국민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졸업.
ROTC 육군대위 만기전역(34기)

소개 :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생활을 하는 3딸의 가장이자 평범한 사람이다.

호기심이 많았고, 오랜 기간 다양한 취미와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중 우연하게 드론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접하게 되고, 그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고,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스킨스쿠바 강사, 프리다빙 강사, 드론 실기평가관의 자격을 갖추었고 드론교육원에서 교관으로 일한 적도 있었고, 조종면허와 소형선박면허 소지자로 한강에서 구조업무에도 종사한 적도 있다.

2종 소형면허를 취득해 bmw 대형 오토바이를 타고, 또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1급 아마추어무선기사. 제한무선통신사, 육상무선통신사, 항공무선통신사 등의 자격을 취득해 무선을 쓰는 것도 일상화되었다.

운수업체에 취업하기 위해 도로교통안전관리자로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아직 하지 못했고, suv 자가정비를 한 지도 어언 20여 년이 지났다.

취미는 직업이 되면 피곤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취미는 취미를 넘어 직업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 여정을 함께 되돌아 보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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